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마노스 3세 (문단 편집) === 의문의 죽음 === 1029년, 조이 황후의 여동생 [[테오도라(11세기)|테오도라]]는 불가리아의 [[프레시안 2세|프레시안]]과 결혼하여 황위를 찬탈할 음모를 꾸몄다. 이 음모는 조기에 발각되었고 프레시안은 실명형을 받은 뒤 [[수도자]]가 되었지만, 테오도라는 처벌받지 않았다. 하지만 1031년에 그녀는 또 다른 음모에 연루되었고, 이번에는 음모의 주동자 [[콘스탄티노스 디오예니스]]와 함께 페트리온의 [[수도원]]에 강제로 수용되었다. 이렇듯 외부에서 그를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로마노스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아내를 홀대하고 정부를 들인 것이다. 조이는 로마노스가 황제로 집권할 수 있게 해준 기반이었다. 로마노스도 처음에는 조이에게서 후계자를 생산하기 위해 최음제를 복용하고 특별한 비법을 행하고 부적을 지니고 주문을 외우는 등 온갖 애를 썼다. 하지만 당시 로마노스는 60세가 넘었고 조이도 50대였기 때문에 끝내 아이를 갖지 못했다. 그러자 로마노스는 아내를 무척 싫어해 한 방에 있는 것 조차 꺼렸고 정부를 뒀다. 또한 그는 아내가 국고에 접근하는 것도 금지했고 그녀에게 공식적으로 한도가 정해져 있는 보잘 것 없는 연금을 내줬다. 남편의 홀대를 받던 조이 황후는 1033년 어느 날 환관 요한네스 오르파노트르푸스의 남동생 미하일을 만났다. 조이는 잘생긴 미하일에게 한 눈에 반했다. 이후 그녀는 미하일을 자주 자신의 침소로 부르다가 환관 요한네스에 따라 남편을 제껴놓고 미하일을 황제로 세울 음모에 가담했다. 한편 로마노스는 미하일을 의심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개인 시종으로 삼아 자주 불러 다리와 발을 주무르게 했다.[* 당시 로마노스는 다리 상태가 안 좋아서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그를 답답하게 여긴 누이 풀케리아가 황제에게 세간의 소문을 전하고 그의 목숨을 노리는 음모가 있을지 모른다는 경고를 전했다. 이에 황제는 미하일을 불러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뜬소문이라는 걸 성스러운 유물에 서약하라고 명령했다. 미하일이 선뜻 그렇게 하자 황제는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그러던 1034년 성금요일[* [[부활절]] 전의 금요일] 전날의 목요일, 로마노스는 목욕탕에서 갑자기 죽었다. 프셀로스는 로마노스 황제가 사망한 정황에 대한 세간의 소문을 듣고 자신의 역사서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황제는 이튿날에 치러질 공공 행사를 몸소 준비하고 있었다. 동이 트기 전, 그는 침소 근처에 있는 아름답게 장식된 대형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시중을 드는 사람은 없었지만 당시에는 분명 죽음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중략) 그는 머리와 몸을 씻은 다음 숨을 크게 쉬면서 수영을 할 수 있는 중간 깊이의 목욕탕으로 갔다. 그는처음에 헤엄을 치고 즐겁게 놀면서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그의 명령을 받고 종자들 몇이 와서 황제를 쉬게 하고 옷을 입혀 주었다. 이들이 황제를 죽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하는 모든 사람들은 황제가 평소의 습관대로 물에 뛰어들었을 때 종자들이 물 밑에서 오랫동안 그의 머리를 붙잡고 있었으며, 그를 목졸라 죽이려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 뒤에 그들은 갔다. >나중에 그 불행한 황제는 물 위에 둥둥 떠있는 채로 발견되었다. 그는 아직 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고 도와 달라는 듯한 몸짓으로 팔을 뻗은 자세였다. 누군가가 안쓰러운 마음에 그의 팔을 잡고 목욕탕에서 꺼내 소파에 뉘었다. 그를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황후는 시중도 받지 않고 달려와서 짐짓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한동안 남편을 바라보다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에 만족하고는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로마노스는 신음하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그는 말을 할 수 없어 표정과 몸짓으로 의사를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그의 호흡은 점점 빨라졌다. 갑자기 그의 입이 열리더니 검은 색의 걸쭉한 물질이 흘러나왔다. 그는 두세 차례 숨을 헐떡이고는 숨을 거두었다. 또다른 역사가 [[요안니스 스킬리치스]]는 로마노스가 황궁의 목욕탕에서 미하일이 보낸 사람들에 의해 교살되었다고 기술했고 에데사의 마테오는 그가 황후에게 독살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당시 로마노스가 쇠약해졌기 때문에 목욕하던 도중 심장마비 또는 발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프셀로스가 나중에 황제의 시신을 직접 보고 기록한 내용을 보면 로마노스가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노인의 얼굴은 야위지 않고 기묘하게 부풀어 올랐고 아무런 색깔이 없어 독살당한 자와 똑같았으며 머리털과 수염이 드문드문 난 모습은 마치 수확이 끝난 뒤의 빈 들판 같았다." 이후 조이는 자신의 정부 미하일을 황제 [[미하일 4세]]로 옹립했고 자신이 미하일의 황후라고 선포했다. 이에 모든 고위층 인사들은 황제 부부 앞에서 이마를 바닥에 대고 경배의 뜻으로 미하일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 뒤 로마노스의 시신은 뚜껑이 없는 관에 담긴 채 콘스타니노플의 거리를 행진한 후 자신이 세운 페리블렙토스 성당으로 운구되었다. 이때 그에게 불만이 많았던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분류:968년 출생]][[분류:1034년 사망]][[분류:동로마 황제]][[분류:암살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